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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스: 당신은 저널리즘 글쓰기에 소설적 기법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널리즘 스타일에 대해 어떤 반감이 있었나요?
울프: 당시 저널리스트는 중립적인, 그러니까 객관적인 목소리를 낼 것이라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1950년대 후반, 196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갑니다. 저는 솔직히 이런 게 정말 지루하다 생각했습니다. 또 돌이켜보면 저 역시 언젠가는 저널리즘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말은, 당시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다들 언론계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했습니다.
아마 제가 저널리스트라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논픽션을 쓸 때 단편소설 작가나 소설가의 기법을 쓰지 못할 게 뭐가 있나? 저의 이런 생각은 위대한 도전이자 위대한 실험이 되었고, 직후인 1960년대 중반 저에겐 이런 방식으로 논픽션을 쓰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제 말은 당시 '뉴저널리즘'이라고 불린 것을 두고 느낀 흥분들과 비교하면 소설을 쓴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로스: 그런 식으로 글을 쓰게 된 건 갑작스러운 일이었나요? 그러니까 어느날 갑자기 '나는 이런 옛날 스타일로 기사를 쓸 수 없어. 나는 새로운 스타일로 쓸 거야. 옛날 스타일은 더 이상 먹히지 않아' 같은 말을 한 건가요? 아니면 당신의 글이 점차 진화하게 된 건가요?
울프: 아닙니다. 저도 일종의 비자발적인 급진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디보자, 몇 년이었더라. 1963년이었을 겁니다. 1962년 후반이군요. 그때 신문업계 파업이 시작됐습니다. 저는 그때 뉴욕 헤럴드 트리뷴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직업을 잃게 된 거죠. 돈을 벌어야했기 때문에 그 때 저는 에스콰이어 매거진으로 갔습니다. 당시 LA의 10대들이 아주 기발한 형태로 자동차를 개조하는 문화에 대해 써보겠다는 아이디어를 팔러 간 것이었습니다. (개조 자동차 디자이너) 빅 대디 에드 로스(Big Daddy Ed Roth)와 조지 배리스(George Barris)의 시대였죠
에스콰이어에서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캘리포니아로 가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Beverly Wilshire 호텔에 체크인했습니다. 장장 4주 동안 어마어마한 비용을 썼습니다. 그리고 뉴욕으로 돌아왔는데, 무엇을 써야될지 전혀 모르겠더군요. 기사를 쓸 수 없었습니다. 에스콰이어의 편집장인 Byron Dobel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솔직히 이 기사를 못 쓰겠어요. 이번 일을 포기해야겠습니다, 라고요. 그러자 그는 "그렇게는 안 돼" 라고 말하더군요. "자네가 쓰겠다고 한 이상한 이 우스꽝스런 자동차에 이미 만달러나 썼다고. 못하겠다는 말은 들어줄 수 없어. 그냥 자네가 쓴 노트를 보여주면 다른 적당한 작가에게 정리해보라고 하겠네."
그날 밤, 아마 밤 9시가 넘었을 텐데, 저는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취재 노트를 메모 형식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친애하는(Dear) Byron에게'하고 시작하는 메모였죠. 맨 앞 부분에는 캘리포니아의 북부 헐리우드에서 열린 10대들을 위한 전시장에서 제가 처음 개조차를 본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리고 곧장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속도로 이 '쪽팔린' 임무를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8~9시간 동안 가장 빠른 속도로 타이핑을 마쳤습니다. 50페이지 정도 됐죠.
저는 이걸 에스콰이어에 넘겨줬습니다. 오전 9시쯤이었고 집으로 가 잠을 잤습니다. 오후 4시쯤 Byron Dobell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톰, '친애하는(Dear) Byron에게'로 시작하는 부분만 지우고 기사로 내보내기로 했어." 그 기사에는 "The Kandy-Colored Tangerine-Flake Streamline Baby"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제 첫 책의 제목이기도 하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면, 저는 제 또래인 한 사람 - Byron Dobell - 에게 메모를 보냈던 것인데, 이게 전국의 독자들을 상대로 주간지 기사 형식으로 글을 쓰는 일의 두려움과 구속에서 어느정도 해방시켜줬던 것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친구에게 편지를 쓸 때와 같은 그런 어조를 쓰게 된 것입니다. 편지에선 좋을 문장을 쓰는 이들이 논문을 쓸 때 얼어붙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로스: 많은 사람들이 마치 친구에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글을 쓰라고 하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만,
울프: 글쎄, 그건...
그로스: 그 말은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글을 쓴다면 더욱 정확해 진다는 의미이겠지만, 반드시 그러한 건 아니지 않나요.
울프: 반드시 사실은 아니지만, 더 자유로워질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처음에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로스: 그렇군요. 그 기사로 당신은 오랜 시간 구축해온 새로운 스타일(문체)을 확립하게 됩니다. 그 스타일이 저널리즘 업계의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스타일이 남긴 유산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데요. 이 스타일은 훌륭한 글들도 많이 낳았는데요, 그만큼 수준 낮은 글들도 낳았습니다. 똑같이 느끼실지 모르겠는데..., 그런가요? 조금 지나친 글들도 많아진 것 같고...
울프: 지나친 과잉으로 흐르기도 하죠, 미사여구로 치장된 지나치게 화려한 산문(Purple Prose)이 특히 그렀죠.
그로스: 네.
울프: 이것(뉴저널리즘적인 글쓰기)은 매우 까다로운 형식입니다. 이런 스타일의 글쓰기를 시도하는 많은 사람들은 먼저 얼마나 많은 취재를 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면의 모든 기법, 그러니까 장면 대 장면 구조, 대화로 이뤄진 단락, 헨리 제임스(미국의 소설가)의 관점(*심리묘사) 같은 것은 취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팩트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수다스러워질 뿐입니다.
그로스: 소설 같은 글쓰기 기법이 신문기사에도 도입되었는데요. 기사가 이렇게 시작되곤 합니다. 새벽 4시였다. 리틀 조니가 깨어났을 때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창문 너머를 내다봤다. 전쟁이 벌어졌다.
울프 : 하하.
그로스: '전쟁이 발발했다'는 짧은 문장 대신, 모든 것을 자세히 묘사하고 소설처럼 쓰는 것입니다.
울프: 저는 솔직히 충분히 시도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신문에 이런 스타일의 글쓰기를 썼던 전성기는 아마도 뉴욕 헤럴드 트리뷴이 뉴욕타임스를 따라잡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Jimmy Breslin이나 Gail Sheehy와 같은 사람들이 훌륭한 초기 작업을 했습니다. 잘 알고 있겠지만, 결코 New York Times를 따라잡지는 못했죠. 하지만 침몰하는 배에서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