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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일생 동안, 프란츠 카프카는 자신이 쓴 작품의 약 90%를 불 태웠다. 41세로 사망한 1924년, 프라하에 있던 그의 책상에서 편지 한 통이 발견됐다. 친구 맥스 브로드(Max Brod)에게 쓴 것이다. "친애하는 맥스에게".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내 마지막 부탁이네. 일기, 원고, 편지 (나와 다른 사람의 것 모두), 스케치 등등, 내가 남긴 모든 것을 읽지 말고 불태워주게."
두 달도 채 안 돼 브로드는 이 요청을 무시하고, 카프카의 미발표 소설들을 출판하기로 계약했다. 카프카의 '심판'(The Trial)은 1925년에 나왔고, 이어 "성"(The Castle)은 1926년에, "아메리카"(Amerika)는 1927년에 출판됐다.
1939년, 브로드는 카프카의 유산을 가득 채운 가방을 들고 프라하발 팔레스타인행 마지막 열차에 올랐다. 나치가 프라하 국경을 닫기 5분 전이었다. 브로드의 이 노력 덕에, 카프카의 소박하고 불가사의한 말뭉치들은 20세기 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점차 인정받았다.
브로드의 가방 안에 담겼던 이 유산을 놓고 50년 넘게 법적 분쟁이 벌어졌다. 카프카의 유산 약 2/3는 영국 옥스포드의 보들리안 도서관으로 향했지만, 나머지 유산(카프카가 그린 그림과 여행 일기, 편지, 초고)의 소유권은 1968년 사망할 때까지 브로드가 갖고 있었고, 이후 그의 비서이자 연인으로 추정되는 에스더 호페(Esther Hoffe)에게 넘어갔다. 호페는 101세로 사망한 2007년, 70대가 된 자신의 두 딸(이바 호페와 루스 위슬러)에게 유산의 소유권을 넘겼는데, 이스라엘국립도서관이 그녀의 유언은 위법하다고 따지고 나섰다. 이스라엘국립도서관은 브로드의 유지에 따라 이 문건의 소유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소송은 2년 넘게 이어졌다. 법원이 두 자매의 손을 들어준다면, 둘째 에바가 이 문건을 독일 마르바흐 독일문학기록원에 마음 편히 매각할 수 있을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고양이들과 살고 있는 자신의 텔아비브 아파트와 스위스 및 이스라엘 은행의 비밀금고에 보관한 문건들도 자유롭게 팔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황은 카프카적Kafkaesque(부조리하고 암울한)이라는 단어를 계속 떠올리게 한다. 카프카가 누군가의 사유재산이 될 수 있다니. 브로드가 카프카의 마지막 요청을 무시한 것은 그 작품이 카프카 개인이 아닌 온 인류의 것이었기 때문 아니었나?
지난 5월, 텔아비브 법원에서 이 문건의 운명을 다루는 재판에 참석했다. 법정으로 향할 때 나는 작고 좁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형광등은 깜빡거렸고 최대 수용 인원은 4명이라는 안내가 쓰여있었다. 나는 소설 "심판The Trial"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체포된 요제프 K.가 법원에 끌려가면서 시작된다. 프라하 전역의 다락방에 법정을 두고 있는 이 법원은 왜인지 일반적인 사법 시스템과 동떨어져 운영됐다. 나는 저소득층 주거용 건물 위 다락방에 있는 소설 속 법정에 도달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시청의 평범한 복도 같은 인조 대리석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옷을 걸친 변호사들이 주위를 서성거렸다. 대부분 노트북이나 두꺼운 문서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바퀴 달린 검은 가방에 더 많은 파일들을 담아 끌고 가는 이들도 많았다.
몇 분 후, 미묘한 공기의 변화가 먼저 자매들이 도착했음 알렸다. 루스는 흰색 운동화에 진주 귀걸이를 했는데, 짧고 하얗게 센 머리는 누군가의 할머니처럼(실제로 그렇다) 보였다. 젊었을 때 엄청난 미인이었던 전직 엘알항공사 직원인 에바는 온통 검은 색으로 꾸미고 왔다. 검은 머리핀으로 긴 적갈색 머리를 고정해뒀다. 루스는 하얀 숄더백을 들었고 에바는 Iams(반려동물 사료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비닐봉투를 들고 있었다.
다섯 줄로 된 법정 안 방청석 나무 의자 중 처음 세 줄에는 십여명의 변호사들이 앉았다. 국립도서관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두 명,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 한 명, 재판부가 임명한 집행관 다섯 명, 에스더 호페의 유언을 대리할 변호사 세 명(국립도서관은 이들이 이 사건에 관련이 없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브로드의 유언을 대리하는 변호사 두 명(자매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은 이들이 이 사건에 관련이 없다고 보고있다)이었다.
카프카의 문건에 미상의 구입 대금(수백만 달러로 알려졌다)을 제시한 마르바흐 독일문학기록원에서도 이스라엘 변호사들을 내세웠다. 루스의 변호사 한 명과 에바의 변호사 세 명이 변호사 무리의 마지막이었다. 사건 당사자인 자매들의 변호사가 네 명 뿐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소설에서 요제프 K는 변호사 여섯 명을 고용한 피고인을 만나게 된다. 그 피고인이 K에게 일곱 번째 변호사와 협상 중이라고 알려주자 K는 왜 그렇게 변호사가 많이 필요하냐고 되물었다. 그 피고인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들 모두가 필요합니다."
Kafka's Last Trial - By Elif Batuman
Sept. 22, 2010, The New York Times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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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카에스크Kafkaesque(카프카적)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에 풍기는 부조리하고 암울한 느낌을 뜻하는 단어다.
-카프카의 여러 작품이 세상에 선보인 과정도 소설처럼 카프카적이었다. 카프카는 죽기 전 공개하지 않은 작품과 편지 등을 공개하지 말고 불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가장 친한 친구는 이를 무시하고 작품 일부를 세상에 공개하더니 이를 자신이 상속 받은 유산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기증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자신의 비서이자 애인에게 넘겨주었다. 부조리하고 암울한 카프카의 소설 속 분위기가 연상되는 이야기다.
-오늘 소개한 내용은 카프카의 유산을 둘러싼 법정 다툼을 다룬 기사의 도입부다. 기사의 제목인 'Kafka's Last Trial'은 '심판', '소송' 등으로 번역되는 카프카의 소설 The Trial을 떠오르게 한다. 소설 속 장면과 실제 법정 속 장면을 묘사해 현실의 법정 투쟁이 소설 속 이야기의 한 장면인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소설을 닮은 도입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글은 카프카의 유산을 둘러싼 법정 다툼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 카프카의 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카프카의 작품이 가지는 가치와 그 유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을 깊이 있는 취재로 소개하면서 마치 한 편의 역사 소설처럼 이야기를 풀어간다.
-새롭게 단장한 코끼리의 번역노트 첫 뉴스레터로 이 기사의 도입부를 소개한 것은 좋은 이야기가 갖춰야 할 첫 번째 조건을 이 기사에서 발견할 수 있어서다. 말장난 같지만, 좋은 이야기는 이야기 소재 자체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문학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작가 카프카의 작품 소유권을 두고 벌어진 법정 분쟁"이란 소재만으로도 흥미가 생긴다.
-흥미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것이 좋은 이야기를 쓰는 출발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 흥미로운 소재이고, 어떻게 써야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새롭게 리뉴얼한 코끼리의 번역노트는 앞으로 이 질문에 답을 해 나갈 예정이다. 해외의 다양한 기사를 소개하면서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읽게 할 수 있는지 같이 고민해보는 것이다.
-코끼리의 번역노트를 운영하는 버티컬 브랜드 '코끼리'는 실제로 일어나 흥미롭고 울림을 주는 실화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 번 읽은 뒤에도 다시 읽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뜻이고, 이런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길이가 보장돼야 하며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무리 길어도 끝까지 읽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는 어떻게 써야 할까. 이야깃거리를 찾는 게 우선이고, 그 다음으로 이야기를 구성할 장면, 장면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캐릭터들이 주고 받는 대화와 움직임, 그 속에서 드러나는 극적인 갈등도 사실 그대로 찾아내야 한다. 이렇게 찾아낸 내용을,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도입부와 여운을 남기는 결말,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읽게 만드는 탄탄한 구조로 써내려가야 한다.
-이런 요소를 저널리즘을 렌즈로 들여다보고 함께 배워나가는 것이 ‘코끼리의 번역노트’가 추구하는 목표다. 이런 이야기 요소가 담긴 기사를 보통 내러티브 저널리즘, 혹은 '뉴저널리즘'이라고 부른다. 1960년대 뉴저널리즘의 창시자로 불리는 톰 울프는 이런 글쓰기는 우선 그에 맞는 취재가 필요하고 그 이후에 다양한 글쓰기 기법을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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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스: 그렇군요. 작가님은 그 기사로 오랜 시간 구축해온 새로운 스타일을 확립하게 됩니다. 그 스타일이 저널리즘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죠. 그 스타일이 남긴 유산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데요. 이 스타일 이후 훌륭한 글도 많이 나왔지만, 그만큼 수준 낮은 글들도 생겨났습니다. 똑같이 느끼실지 모르겠는데..., 그런가요? 조금 지나친 글들도 많아진 것 같고...
울프: 지나친 과잉으로 흐르기도 하죠, 미사여구로 치장된 지나치게 화려한 산문 형태의 글(Purple Prose)이 특히 그렇죠.
그로스: 네.
울프: 뉴저널리즘적인 글쓰기는 매우 까다롭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글쓰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우선 얼마나 많이 취재를 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기법, 그러니까 장면 대 장면 구조, 대화로 이뤄진 단락, 헨리 제임스(미국의 소설가)가 자주 쓴 인물의 심리묘사 기법 같은 것은 취재를 통해서 얻은 팩트 없이는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저 (팩트 없이) 수다스러워질 뿐입니다.
Tom Wolfe: Writing Nonfiction 'Became A Great Game And A Great Experiment'
May. 15. 2018, NPR Fresh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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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울프의 말처럼 장면, 대화, 인물과 같은 이야기 요소들을 사용해 흥미로운 소재를 재미있게 풀어낸 기사들을 살펴볼 생각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이야기 요소의 특징들이 잘 담긴 기사의 일부를 2~3편 정도 선택해 소개하는 방식이다.
-이 뉴스레터가 흥미로운 실화 이야기를 써보려는 이들에겐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참고 자료가 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찾는 이들에게 흥미로운 리뷰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하단의 버튼을 누르면 잘못된 번역을 신고하거나 의견을 남길 수 있다.
-그런데 카프카의 유산을 둘러싼 재판은 어떻게 마무리되었냐고?
-2008년 시작된 재판은 2016년 이스라엘대법원이 이스라엘국립도서관의 손을 들어주면서 마무리됐다. BBC에 따르면, 2012년 텔아비브가정법원은 카프카의 친구 맥스 브로드가 가지고 있던 문건은 그의 뜻에 따라 국립도서관이 소유권을 갖게 되며, 에스더 호페는 딸에게 소유권을 넘길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스라엘대법원은 이 판단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 재판이 인상적이었던지 한국에서는 창작 뮤지컬도 만들어졌다. 뮤지컬 <호프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는 이 법정 다툼을 각색해 프란츠 카프카를 연상케하는 가상의 작가가 남긴 유산을 안고 사는 한 여성 에바 호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실 속 에바 호페는 2018년 사망했지만, 한국의 뮤지컬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셈이다.
-이 뮤지컬은 유산을 물려받은 여성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오늘 소개한 기사는 카프카 문건이 법적 분쟁을 겪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지만, 뮤지컬과 같이 에바 호페을 중심으로 서술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전개됐을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에 영향을 받고 크고 작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품기도 한다. 짧고 간략한 글로는 모두 소화할 수 없다.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다.
-요약하고 정리해주는 숏폼 콘텐츠가 대세이지만 이곳에선 조금은 길고 묵직한 콘텐츠를 천천히 음미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뉴스레터는 조금은 길어질 것이고 조금은 집중해서 읽어내려 갈 수 있도록 준비해갈 것이다. 대세에서 벗어났더라도 발자국을 남겨가며 조금은 자유롭게 말이다.
“마치 어깨가 떡 벌어진 코끼리가 그 무리를 떠나 마음대로 숲속을 거닐 듯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타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