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 메모
-옥사나 술리마는 전직 공무원으로 이혼한 뒤 딸과 함께 키이우에 살고 있었다. 부차에 방문 한 건 러시아가 공격해 들어오기 48시간 전이었다. 고향 부차의 친구 집에 방문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러시아군의 침략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그녀는 부차에 갇혀버렸다.
-그녀는 3월10일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소식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러시아군이 철수한 뒤 4월, 부차의 한 학교 뒤편 감자창고에서 발견됐다. 머리엔 총을 맞은 채였고, 성폭행당한 상태였다.
-뉴욕타임스 취재팀은 러시아 점령지였던 우크라이나의 도시 부차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취재했다. 이 기사는 3명의 여성의 삶과 그들이 실종된 뒤 죽게 된 과정들을 소개하고 있다. 옥사나는 3명 중 처음으로 소개된 여성이었다.
-기본적으로 이 기사는 러시아군에 의해 살해된 3명의 여성 민간인을 교차해서 다룬다. 여성들의 삶을 각자 차례로 소개한 뒤 다시 죽음을 차례로 나열했다. 서로 다른 사연의 세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내러티브 원칙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나신스키 교수는 "누군가는 이상적이라고 꼽는 효과적인 내러티브 논픽션의 표준 접근법은 주된 캐릭터의 사적인 여정을 통해 더 큰 사회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내러티브 기사의 성공 여부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슈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인물을 따라다닐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인물이 얼마나 믿을 만하고, 이야기에 무게감을 더하는지, 또 취재는 가능할지에 따라 내러티브의 질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바나신스키 교수는 친구의 표현을 빌려 "아주 작은 것으로 거대한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의 특성을 '스토리텔링의 물리학'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원칙을 알고 있다고 모두가 실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마감 시간이 존재하는 저널리즘(deadline-driven journalism)에선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제한된 시간 동안,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를 발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취재가 안 되거나, 사건의 일부는 보여줄 수 있지만 전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사례일 수도 있다. 바나신스키 교수는 이 기사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좋은 예라고 설명한다.
-이 기사의 리드는 이렇게 시작한다. "한 여성은 심하게 맞은 채 눈에 총을 맞았다. 다른 여성은 러시아군에 붙잡혀 머리에 총을 맞은 채 창고에서 발견됐다. 81세 노인은, 살해 당했는지 내몰렸는지 알 수 없지만, 마당에서 목을 매단 채였다."
-세 개의 문장이 각 여성들의 상황을 차례로 보여준다. 그리고 곧바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풀어낸다. 직접적으로 요약한 핵심문단(nut)이 때론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렇게 이 기사는 에둘러 가지 않고 3명의 여성이 각각 사라지던 순간과 다시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차례차례 보여준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짧은 해설과 인용으로 표현했고, 일부 구체적인 장면 묘사도 눈에 띈다.
-바나신스키 교수는 "여러 인물과 복잡한 사안을 다룰 때, 복잡한 구조를 활용해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며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대체로 직접적으로 써 내려가는 것이다. 마감에 쫓겨 빠르게 써야 할 때, 독자들도 빠르게 읽을 수 있다"고 했다.
-항상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를 쓸 수 만은 없을 것이다.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강렬한 이야기를 짧게 다뤄야 할 필요도 있다. 내러티브를 다루는 방식이 매번 소설의 그것처럼 발단 전개 절정 결말로 천천히 치달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특히 마감에 쫓기는 기자들이 매번 기승전결이 갖춰진 기사를 쓰긴 어려울 수 있다.
-해외 내러티브 기사를 길게 번역해서 소개했던 지난 레터와 달리 이번 회차에선 아주 짧게 본문의 한 문장만 소개했다. 기사를 번역해서 소개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저작권 문제와, '너무 길어 읽기 힘들다'는 지적을 고려해 앞으로 본문을 얼만큼 소개할 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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