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라배마대 신경생물학자 에이미 비숍은 교수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에야 테이블에 앉았다. 2010년 2월 12일 오후 3시였고, 생물학과 교수 및 교직원 13명이 창문 하나 없는 쉘비과학기술관 3층 회의실에 모여있었다. 학과장인 식물학자 고피 포딜라가 회의 안건이 담긴 프린트를 나눠줬다. 비숍이 앉은 곳은 학과장의 옆자리, 출입문 바로 옆이었다. 그녀의 핸드백 안에 있는 것은 권총이었다.
마흔다섯인 비숍의 얼굴은 길고 창백했다. 단발의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둥글게 감쌌고, 앞머리는 파란 눈 바로 위까지 내려왔다. 그녀는 보통 회의 때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편이었지만, 이날은 유독 침울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이유야 뻔했다. 그녀는 1년 전 정교수(Tenure, 종신교수직) 심사에 떨어졌다. 그 결정에 불복해 이의를 제기했지만 결과가 바뀌진 않았다. 비숍은 이번 학기가 끝나면 직업을 잃게 된다. 게다가 학과장이 나눠준 회의 안건은 대부분 다음 학기 계획과 관련된 것이었다. 비숍이 조용히 앉아만 있던 것은 그런 이유였다. 사실 그녀는 회의에 참석할 필요도 없었다.
생화학자인 데브라 모리아리티 교수는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비숍을 바라봤다. 모리아리티는 비숍이 정교수 심사를 두고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알았다. 둘은 비숍이 이 학교에 임용돼 온 2003년부터 친했다. 둘은 가족 이야기도 자주 했다. 비숍은 4명의 자녀를 뒀고, 모리아리티는 최근 할머니가 됐다. 하지만 모리아리티는 비숍의 정교수 심사에서 반대표를 던졌고, 비숍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둘은 여전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비숍은 모리아리티에게 자신이 겪은 직업적 절망감을 털어놨다. “내 인생은 끝났어요.” 비숍이 언제가 이렇게 말했다. 모리아리티는 비숍에게 다른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적합한 자리를 잘 찾을 수 있을 거야.” 모리아리티는 말했다. 모리아리티는 회의가 끝나면 비숍에게 새로운 자리를 잘 찾았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의가 열리는 50분 동안 비숍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갈 무렵, 비숍이 갑자기 일어섰고, 9㎜ 루거 반자동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옆 자리에 앉은 학과장의 머리에 한 발 쏘았다. 귀가 멎을 것 같은 총성이 울렸다. 비숍은 총을 또 쐈고 조교인 스테파니 몬티치올로가 맞았다.그 다음, 비숍은 몸을 돌려 세포생물학자인 에이드리엘 존슨에게 총을 쐈다.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숨을 곳을 찾았다. 비숍이 단 하나 있는 출입문을 막고 서 있었다. 모리아리티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눈을 부릅 뜨고 입을 굳게 다문 비숍이 다른 동료 마리아 래글랜드 데이브에게 총을 겨누고 총알을 발사하기까지 말이다.
모리아리티는 테이블 밑으로 뛰어들었다. 총성이 그녀의 머리 위쪽으로 울렸을 때 모리아리티는 비숍의 다리를 붙들고 소리쳤다. “에이미, 이러지마! 네 딸을 생각해봐. 내 손자도 생각해줘!” 비숍은 절규하는 모리아리티를 내려다 봤다. 그리고 총구를 그녀에게 향했다.
딸깍. 모리아리티는 공포에 질려 총구를 바라봤다. 딸깍. 총알이 걸렸다. 모리아리티는 비숍을 피해 복도로 기어 나갔다. 비숍이 그녀를 따라왔다. 딸깍 딸깍. 비숍은 딸깍 소리를 계속 내며 방아쇠를 당겼다. 비숍이 총을 고치는 사이 모리아리티는 다른 회의실로 뛰어들어갔고, 그곳에 있던 교직원들이 책상을 움직여 문을 막았다. 훗날 검찰은 총격이 벌어진 회의실이 “폭탄이 터진 전쟁터 같았다”고 밝혔다. 여섯 명이 총에 맞았고, 이 중 3명이 사망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비숍은 계단을 내려가 여자 화장실에서 총을 물로 씻어내고 피 묻은 체크무늬 블레이저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한 연구실로 들어가 거기 있던 학생에게 휴대전화를 빌릴 수 있는지 물었다. 비숍은 평소 수업이 끝나면 데리러 오는 남편 짐에게 전화했다. “난 이제 끝났어.” 그녀는 건물 뒷편으로 빠져 나갔고, 그곳에서 보안관에게 체포됐다.
뉴스 채널의 보도 차량이 이 비극을 전하기 위해 학교에 속속 도착했다. 2010년의 미국은 이미 총기난사 사건으로 한계치를 넘어선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은 2월에 벌어졌는데, 3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총기 사건이 새해 들어 이미 15건 벌어졌다. 그러나 비숍은 다른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우선 여성이 총기난사 사건을 저지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게다가 비숍은 어린 시절부터 높은 성적을 유지해왔고,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공중보건학부에서 박사후 과정도 마쳤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안정적으로 보였고 범죄 경력이나 약물 오남용 기록도 없었다.
1999년 벌어진 콜럼바인고등학교에서부터 2013년 샌디훅초등학교까지,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뒤 미국에서는 그동안 간과했던 잔혹한 범죄의 징후가 있지 않았나 따져보는 일이 계속 이어졌다. “이 사건은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탐정소설이 아닙니다.” 에이미 비숍의 국선 변호인 로이 밀러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비숍의 범죄를 목격한 증인은 9명이나 됐다. 문제는 ‘왜’였다. 사건 직후 언론은 처음에는 비숍의 직업적인 스트레스에 주목했다. (미국의 학계를 다루는 전문지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은 “정교수 임용이 생사를 가르는 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밀러는 이 사건이 훨씬 복잡하다고 봤다. “우리 주위에 걸어다니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밀러가 말했다. “그런 사람을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비숍이 체포된 다음 날 아침, 보안관 사무실에 폴 프레이저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자신이 메사츄세츠주 브레인트리의 경찰서장이라고 했다. 브레인트리는 비숍이 자란 보스턴 교외의 작은 도시다. “어제 잡힌 그 여자에 대해 알고 싶을 것 같아서 전화했습니다. 그 여자는 1986년에 자기 남동생을 총으로 쏴 죽였어요.”
A Loaded Gun, By Patrick Radden Keef, Feb 3, 2013, The New Yo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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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백에 권총을 넣고 교수회의에 참석한 에이미 비숍의 모습을 보면 긴장감이 느껴진다. 에이미 비숍 교수는 평소와 달리 음침한 표정을 짓다가 회의가 끝날 때 쯤 자리에서 일어나 이 총을 꺼내든다.
-이 사건은 미국은 물론 한국 등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괴롭힘 당하던 남학생이 학교를 찾아가 벌이는 총기난사 사건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던 같다. 총격을 당한 6명 중 3명이 죽었지만, 부상자를 비롯한 수많은 증인들이 살아남았고, 무엇보다 총격범인 에이미 비숍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 모두의 관심은 에이미 비숍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질렀으며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로 향했다.
-그 실마리는 앞서 소개한 기사 도입부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비숍 교수는 27년 전 남동생을 총으로 쏴 죽였다. 당시 오발 사건으로 정리돼 처벌은 없었다.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지고 과거 수사 기록들이 공개됐다. 오발사고로 정리되는 과정에 의문이 제기됐다. 그리고 당시 벌어진 일이 ‘오발사고’가 아닌 ‘살인사건’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나왔다. 패트릭 레이든 키프 기자는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에이미 비숍 교수 본인과 그 부모, 경찰, 지인들을 인터뷰한다.
-기자는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기 전 생생한 총격 현장으로 먼저 독자를 이끈다. 비숍 교수의 표정과 총을 겨누는 모습.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이 걸려 발사되지 않아 ‘딸깍’ 소리를 내는 장면이 직접 현장을 보는 것 같다.
-이처럼 생생한 묘사가 가능한 것은 현장의 움직임을 충실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과 조사 기록 등을 토대로 재구성했을 이 장면은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는 움직임, 즉 액션Action을 활자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이만한 것도 없다. 사진이나 영상과 달리 캐릭터의 생각과 전후 사정들을 곁들여 액션이 벌어지는 장면을 더 자세히 표현할 수도 있다. 모리아리티와 비숍의 과거를 설명한 대목은 액션의 긴장감을 더욱 높인다.
-사실 이 기사는 전체적으로 비숍의 27년 전 총격 사고를 해설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독자들이 잘 아는 정보(2010년 총기난사)에서 잘 모르는 새로운 정보(1986년 총기사고)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우선 2010년의 사건 현장을 세밀하게 묘사한 것이다.
-이제 1986년 벌어진 총기사고를 묘사한 대목을 잠깐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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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2월 6일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주디 비숍(어머니)이 방을 나왔다. 다른 식구들은 윗층에서 아직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집을 나서 차를 몰았다. 평소처럼 인근의 마굿간으로 가서 늙은 숫말을 돌보기 위해서다. 보통 몇 시간 정도 말을 운동시키고, 마굿간을 청소한다. 그녀가 언제 집으로 돌아왔는지는 훗날 아주 중요한 의문으로 남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녀가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한 오후 2시 직후에 그녀는 집에 있었다.
경찰서는 비숍 가족의 집에서 2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관들은 매우 빨리 현장에 도착했다. 주디는 대문을 열어 그들을 맞았고, 그녀의 옷에는 피가 튀어있었다. 그녀는 경찰관들을 이끌고 부엌으로 갔다. 아들 세스는 피에 흠뻑 젖은 채 바닥에 누워있었고, 가슴에 입은 치명적인 상처에서는 계속 피가 흘렀다. 스물한 살이었던 에이미는 당시 현장에서 보이지 않았다.
구급 대원들이 조치하는 동안 주디는 경찰관에게 말했다. 그녀는 막 식료품점에서 돌아온 아들과 함께 부엌에 있었고, 그때 에이미가 남편 샘의 산탄총을 들고 내려왔다고 했다.
주디는 경찰관에게 말했다. “에이미가 ‘총알이 들어갔는데 어떻게 빼내야 할 지 모르겠어요’하고 제게 말했어요. 저는 ‘사람한테 겨누면 안 돼’라고 했습니다.” 에이미는 동생 세스에게 총을 보여주려고 몸을 돌렸다. 주디가 말하길 “그 때 총이 발사됐어요.” 부엌은 조그만했고, 에이미는 동생과 아주 가깝게 서 있었다. 총은 바로 앞에서 발사돼 세스를 관통했다. 주디는 세스가 쓰러지자 에이미가 집 밖으로 뛰쳐 나갔다고 말했다.
A Loaded Gun, By Patrick Radden Keef, Feb 3, 2013, The New Yorker
-에이미 비숍 교수의 어머니 주디가 총에 맞고 쓰러진 아들 세스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이다. 2010년의 사건을 묘사할 때처럼 세밀하지 않은 데 이는 당시 현장에 대한 증언이 부족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해 당시 현장이 머리에 그려지는 데 충분하다. 이때도 주디의 말과 그 시선으로 당시 현장의 움직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 내용들을 자세히 보면 액션은 장면 속에서 캐릭터가 하는 행동을 뜻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액션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이런 액션 자체가 이야기의 핵심적인 주제와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글을 읽는 재미를 줘 독자를 몰입시킨다.
-이 기사의 전체 분량은 약 1만4000단어, A4 용지 약 30장이다. 이렇게 긴 기사에서만 이런 묘사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난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댄스홀 총기 난사 사건’의 뒷 이야기를 소개한 아래 기사에도 등장한다. 이 기사는 약 740단어(A4 2장) 분량이다. 이미 한 차례 총기난사를 벌인 뒤 인근의 다른 댄스홀에 온 범인이 당시 가게를 보던 젊은 청년과 마주쳐 격투를 벌이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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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개발자인 차이씨는 매주 몇 차례 조부모님이 운영하는 연회장 매표소에서 일을 도왔다. 차이씨는 토요일 밤 10시35분쯤 처음 보는 남자와 마주치게 됐다. 차이씨는 진짜 총을 본 적이 없었지만, 이 남자가 들고 있는 개조된 총을 보자마자 위험한 무기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장이 철렁했어요.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차이씨가 말했다.
그 다음 순간, 차이씨는 총격범을 향해 돌진해 총신을 붙잡았고, 총격범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 순간에는 거의 원초적인 본능대로 움직였던 것 같아요.” 차이씨가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긴 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않나요.”
두 사람은 1분30초 정도 총을 두고 몸싸움을 벌였다. 둘의 힘이 비슷했던 것 같았다고 차이씨가 말했다. 그러다 총격범은 총을 내려다보더니 한 손을 떼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다. 차이씨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총을 빼았았다.
그리고 남자에게 총을 겨눠 소리쳤다. “여기서 꺼져!”
By Victoria Kim, Jan. 23, 2023,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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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묘사는 생생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이며, 독자들을 현장에 있는 것처럼 만든다. 활자로 이런 모습을 모두 재현하는 작업은 어렵지만, 반드시 갈고 닦아야 하는 기술이이다. 저널리즘 격언 하나가 떠오른다. ‘뉴스는 동사다’News is ver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