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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인 월요일, 캘리포니아는 흐리고 계절에 맞지 않게 제법 쌀쌀했다. 100명이 넘는 이들이 TV 스튜디오에 모였다. 이 거대한 스튜디오는 백색 무대, 백색 벽, 그리고 수십개의 조명과 램프로 꾸며졌다. 마치 거대한 기계실처럼 보였다. 한 시간쯤 뒤면 이 스튜디오에서 11월24일 밤에 컬러 TV로 방송될 예정인 NBC의 1시간짜리 쇼의 녹화가 시작된다. 이 쇼는 25년 경력의 시나트라가 엔터테이너로서 이어온 삶을 집중 조명하게 될 것이다. 이 쇼가 곧 CBS에서 방영될 프랭크 시나트라의 사생활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따로 검증하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NBC의 쇼는 시나트라가 그를 고향인 뉴저지주 호보컨에서 할리우드로 이끈 히트곡을 1시간 동안 부르는 것으로 구성되었고, 이따금 영화나 맥주 광고가 삽입될 예정이었다. 감기에 걸리기 전 시나트라는 이 쇼를 매우 기대했다. 이 쇼는 그의 전성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로큰롤 팬들에게 그의 능력을 선보일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틀스와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홍보 담당자인 짐 마호니가 준비한 보도자료에는 그의 로큰롤 실력이 강조됐다. “멜론 상자를 가릴 정도로 두꺼운 걸레 같은 머리를 한 어린 가수들에게 지쳤다면, 이 쇼 ‘시나트라, 한 남자와 그의 음악'이 신선한 감흥을 일으킬 것입니다.”
하지만 LA에 있는 이 스튜디오에는 기대와 함께 긴장감도 감돌았다. 시나트라의 목소리 상태가 어떨지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43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넬슨 리들의 오케스트라는 이미 도착했고, 몇몇은 미리 백색의 무대 위에 올라 손을 풀기 시작했다.
짙은 금빛 머리를 한 드와이트 해미온 감독이 무대와 오케스트라가 한눈에 보이는 유리 통제 부스 안에 앉아있었다. 그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뮤지컬 배우) 특집 프로그램을 기획해 명성을 얻었다. 카메라 스태프와 기술팀, 보안요원, 버드와이저 광고 담당자도 카메라와 무대 사이에 서서 기다렸다. 이 건물의 다른 부서에서 비서로 일하는 여직원 십여명도 몰래 빠져나와 무대를 보기 위해 서 있던 참이다.
오전 11시가 되기 몇 분 전, 시나트라가 주차장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게 목격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나트라의 모습이 멀쩡해 보인다는 것이다. 무대 주위로 모인 이들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날렵하게 잘 차려입은 남자가 가까이 다가올 수록, 사람들은 이 남자가 시나트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다. 그는 시나트라의 대역 배우 조니 델가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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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후 진짜 프랭크 시나트라가 걸어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파란 눈동자는 조금 촉촉해 보였다. 감기 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어쨌든 노래를 부르기 위해 온 것이다. 일정은 촉박했고, 오케스트라와 스태프들을 모으고 스튜디오를 빌리는 데 이미 수천 달러가 들었다. 시나트라는 목을 풀기 위해 연습실로 가던 중 스튜디오를 보았다. 무대와 오케스트라 단상이 그가 특별히 요구한 만큼 가깝게 붙어있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분명 화가 단단히 난 모습이었다. 잠시 후 연습실에서 주먹으로 피아노 상판을 내려치는 소리와 반주자인 빌 밀러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프랭크 너무 화내지 마.”
그때 짐 마호니와 다른 남자가 연습실로 들어와 이날 아침 뉴욕에서 사망한 여성 기자 도로시 킬갈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시나트라를 오랫동안 비판해왔고, 시나트라도 나이트클럽에서 공연할 때 그녀에 대해 무례하게 조롱하기도 했다. 그녀가 사망했지만 그는 적당히 자신의 마음을 타협하지 안았다. “도로시 킬갈렌이 죽었군.” 그는 이 말을 계속 반복하더니 연습실을 나와 서성거렸다. “흠, 이제는 내 행동을 바꿔야겠군.”
시나트라가 다시 연습실에 들어서자, 연주자들이 자기 악기를 들고 자기 자리에서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시나트라는 목을 몇 번 가다듬고 오케스트라와 합주하기 전 “내 걱정은 하지 말아요”Don’t Worry About Me를 만족스럽게 불렀다. 하지만 목소리가 언제까지 버텨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듯 조급해졌다.
“그냥 바로 녹화하는 게 어때?” 시나트라가 드와이트 해미온 감독이 스태프들과 앉아 있는 유리 부스를 올려보며 말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제어판에 집중하는 듯 했다.
“그냥 바로 녹화하는 게 어때?” 시나트라가 다시 말했다.
카메라 옆에서 헤드셋을 끼고 있던 무대 매니저가 시나트라의 말을 마이크에 대고 제어실에 그대로 전달했다. “그냥 바로 녹화 시작하는 게 어떠냐는데요?”
“코트에 넥타이를 하고,” 시나트라가 노락생 목폴라 스웨터를 입은 시나트라가 말했다. “녹화하는 게…”
갑자기 해미온의 목소리가 앰프로 울렸다. “그래 프랭크, 다시 한번 가는 게 어때요…”
“그래. 다시 한 번 하기 좀 어떻네.” 시나트라가 툭 내뱉었다.
해미온의 말이 끝나고 잠시 침묵하던 시나트라는 “1950년에나 하던 이런 방식을 그만두지 않으면 아마 우리는…” 시나트라는 계속해서 쇼를 구성하는데 현대적인 기술이 부족하다며 해미온을 비난했다. 그러다 갑자기 불필요한 일에 목소리를 낭비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멈췄다. 드와이트 해미온은 강한 인내심을 발휘하며 침착하게 시나트라가 한 말을 전혀 듣지 못한 척했다. 그리고 쇼의 오프닝 부분을 설명해 줬다. 몇 분 후 시나트라는 카메라 근처에 놓인 커다란 메모장에 적혀 있는 오프닝 멘트를 읽어보며 준비했다. ‘노래가 없다면’Without a Song에 이어질 이 멘트였다.
“프랭크 시나트라 쇼. 1막 10장 테이크 1” 슬레이트를 들고 있던 남자 카메라 앞으로 뛰어가 탁 소리를 내며 슬레이트를 치고 다시 뛰어 나왔다.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나요?” 시나트라가 말했다. “노래가 없다면 이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를요. 꽤 음산한 곳이 될 것입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시나트라가 갑자기 멈췄다.
“잠시만요.” “시나트라가 말했다. “거기, 마실 것 좀 가져다줘.’
촬영이 다시 시작됐다.
“프랭크 시나트라 쇼. 1막 10장 테이크 2” 슬레이트를 든 남자가 다시 외쳤다.
“노래가 없다면 이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프랭크 시나트라는 메모판을 읽었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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