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1964년 3월13일 새벽 3시 20분, 미국 뉴욕시 퀸스의 큐가든(Kew Gardens)에 한 여성의 비명이 울렸습니다. 소리의 주인공은 28세 여성 키티 제노비스였습니다. 그녀는 늦게까지 바에서 일하고 차를 몰아 집 앞에 막 도착한 참이었습니다.
다른 주민들처럼 집 근처 기차역에 주차하고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평소와 별 다른 것 없는 일상적인 하루의 마무리였죠.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뒤쫓던 남자가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윈스턴 모슬리. 출퇴근 기록 장치를 관리하는 회사원이었죠. 모슬리는 아내와 세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죠. 하지만 그는 사냥감을 물색하는 잔혹한 사냥꾼이었습니다. 차를 몰고 거리를 배회하며 희생양을 찾아다니던 중 신호대기로 정차하고 있던 제노비스를 발견하고 뒤를 쫓습니다.
제노비스는 주차하고 집으로 천천히 걸어갔죠. 익숙한 길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이곳에 이사 와 1년쯤 살았으니까요. 그러다, 한 남자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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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비스는 자동차 불을 끄고 문을 잠근 뒤, 아파트 입구를 향해 30미터가량 걸어갔다. 그녀의 집이 있는 튜더빌딩은 1층에 상점이 있고 2층부터 주거 공간이었다.
건물 전면에 상점 출입구가 있고, 아파트 출입구는 건물 뒤쪽으로 나 있었다. 깊은 밤, 대부분의 주거 지역처럼 어둠이 드리웠다.
제노비스는 한 남자가 인근의 건물 한쪽 끝에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긴장한 채 리치먼드힐에 있는 102경찰지구대로 연결되는 전화 박스로 향했다.
그녀가 서점 앞을 비추는 가로등까지 갔을 때 남자가 그녀를 붙잡았다. 제노비스는 비명을 질렀다. 책방을 마주 보는 인근의 10층 아파트에 불이 켜졌다. 창문이 열린 틈으로, 이른 새벽 정적을 깨는 목소리가 울렸다.
제노비스는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칼로 찌르고 있어! 사람 살려!”
위층 창문 중 하나에서 한 남자가 외쳤다. “그 여자 좀 내버려 둬!”
여자를 공격하던 남자는 위를 바라보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주차해 놓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떠났다. 제노비스는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 너머 조명 꺼지자, 남자는 제노비스에게 돌아왔다. 제노비스는 건물 측면의 주차장을 지나 아파트 입구로 향하던 참이었다. 남자는 그녀에게 다시 흉기를 휘둘렀다.
“사람 살려! 날 죽이려고 해요. 사람 살려!” 제노비스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사람 살려!”
아파트 창문이 다시 열렸고, 여러 집에서 조명을 켰다. 남자는 다시 자리를 떠 차를 몰고 떠났다. 제노비스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JFK국제공항으로 가는 Q-10 버스가 그녀를 지나쳐 갔다. 오전 3시 35분이었다.
남자는 다시 돌아왔다. 그때 제노비스는 건물 안쪽으로 기어들어 갔다. 새로 페인트칠한 갈색 아파트 출입문이 이제 안전하다는 희망을 주는 듯했다. 남자가 첫 번째 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거기에 없었다. 두 번째 문을 열자, 계단 아래 바닥에 쓰러진 제노비스를 발견했다. 그는 그녀를 세 번째로 잔혹하게 찔렀다. 치명상이었다.
경찰이 제노비스의 이웃인 한 남성으로부터 첫 신고를 받았을 때는 오전 3시 50분이었다. 경찰은 2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거리에는 이웃인 70세 여성과 다른 여성 한 명뿐이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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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비스는 이날 모슬리에게 칼에 찔리고 성폭행 당한 뒤 사망합니다. 잔혹한 죽음이었지만 그 해 뉴욕시에서 벌어진 6361건의 살인 사건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심야에 귀가 중인 여성이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일은 빈번하게 벌어졌습니다. 다음날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을 몇 줄짜리 단신 기사로만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과 비극적 죽음은 2주가 지나 뉴욕타임스 1면에 다시 등장합니다. 위에 인용한 내용이 당시 1면에 실린 기사 중 일부입니다. 그리고 55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기억하게 되죠. 그녀의 죽음을 아주 특별한 것으로 만든 것은 살인범인 모슬리도, 피해자인 제노비스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38’이라는 숫자 때문입니다.